오늘만 사는 사람

2023 서울시립교향악단 강변음악회 후기 본문

공연 관람

2023 서울시립교향악단 강변음악회 후기

오조디 2023. 6. 4. 14:21

 
작년 이맘때쯤 했지만 보지 못했던 서울시향 강변음악회. 올해 반드시 보겠다고 서울시향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두고 기다렸다. 2023 서울시향 강변음악회는 6월 3일 토요일 저녁 19시 30분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개최되었다. 소요시간은 한 시간 반 정도였다.
 
집에서 멀지 않아서 자전거를 타고 갔다. 커피도 사고 겸사겸사해서 19시 정도에 도착했다. 여의도는 바글바글한데 사람들이 생각보다 관심이 없는지... 공연 30분 전인데도 가운데 앞쪽 두 블럭만 꽤 차 있었다. 바보들! 다른 오케스트라도 아니고 무려 서울시립교향악단인데! 
 
가운데와 가까운 사이드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분명 우리가 먼저 앉은 자린데 제 아이 보여주겠다고 자리를 갈취하신 아주머니... 애가 참 좋은거 배우겠네요. 싸우기도 싫고.. 그냥 양보했다. 친구들 둘이 앉으라고 하고 나는 혼자 다른 곳에 앉아 공연을 기다렸다. 근데 하필 H의 차를 빼달라는 전화가 와서 H는 부랴부랴 돌아가고 나랑 G랑 둘이 앉아서 공연을 봤다.
 
무료공연이자 야외공연은 말그대로 개판이었다. 그래서 자꾸 웃음이 났다. 통로사이로 계속 킥보드를 타고 달리는 어린아이, 양보해 준 자리에 앉아서 박자마다 몸을 흔들거리는 아이, 오케스트라 뒤로 들리는 버스킹 소리, 죽을 듯이 하는 기침소리, 귓속말할 생각 없이 떠드는 남자들, 전 공연을 다 휴대폰으로 찍는 사람들 등등... 공연장에서 볼 수 없는 광경들과 태연하게 연주를 이어나가는 서울시향의 조합이 너무나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혼돈의 카오스... 말투 때문에 혹시나 이거 비꼬는 거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말 비꼬는 거 아니고 재미있었다. 이게 바로 무료 야외공연의 맛이지! 하면서 봤다. 
 
좋은 날씨에 한강을 배경으로 한 서울시향의 공연을 들으며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역시 서울이다'라는 것이었다. 이런 고퀄의 공연을 좋은 부지에서 할 수 있고 게다가 무료라니... 이래서 서울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지방에 이런 좋은 복지가 있을 수 있지만 과연 서울에 비할까. (내가 지방출신임) 나는 지방에서도 대도시 출신이지만 가끔 이런 문화적 격차를 느낄 때 안타깝다. 지방에도 이정도의 인프라가 갖춰질 수 있을까, 갖춰진다 해도 누릴 사람이 있을까. 우리나라는 너무 서울에만 많은 것들이 있다.
두 번째로 많이 든 생각은 '반드시 귀빈이 되어야겠다'는 생각. 초청석을 가장 로얄석에 5줄을 깔아 뒀는데 두줄 넘게 채워지지가 않았다. 관계자나 관계자의 가족들을 위해 맡아둔 좌석인데 그 사람들은 오지도 않은 것이다. 그래서 공연 시작 5분 전에 초청석 스티커를 다 떼어버리고 일반인들에게 앉으라고 했는데 또 한 10 좌석 정도는 그대로 뒀다. 이유인즉슨 그 사람들이 오고 있다는 것. 자리가 없어서 앉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오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가장 좋은 자리 10 좌석을 남겨두는구나. 심지어 그 사람들은 공연이 시작한 지 40분 만에 와서는 앉자마자 귓속말도 아니고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스태프들이 얼음물을 부랴부랴 뛰어와서 가져다주고... 또 다른 "귀빈" 가족들은 한 손에 텐트를 들고 느긋~하게 걸어왔다. 내 바로 뒷좌석에 앉은 아이는 공연 내내 조잘조잘 말을 했고 (아이 탓X 아이는 그럴 수 있고 그래야 함. 그걸 조절하는 것은 부모의 역할이다.) 부모는 음악을 따라 "불렀다". 좋은 공연이었음에도 이런 경험들을 바로 앞에서 겪으니 초청을 받는 귀빈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귀빈 다운 귀빈으로^^
 
개판이라고 말한 것과, 비뚤어진 생각을 가진 것을 별개로 서울시향 강변음악회는 정말 좋았다. 가장 좋았던 것은 아마도 날씨였을 것이다. 25도 이하의 덥지 않은 기온에 미세먼지 없는 하늘, 약간 차가운 바람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좋은 날씨에서 클래식을 듣는 기분은 정말 황홀했다. 야외에서 듣는 클래식 연주는 작년 예술의 전당 앞에서의 클래식 버스킹이 처음이었는데, 오케스트라는 정말 색다른 기분이었다. 
게다가 그 오케스트라가 서울시향이라면...? 구멍없기로 유명한 서울시향의 연주는 정말 좋았다. 프로그램 구성도 대부분 사람들이 많이 아는 것들이어서 정말 모두가 즐길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확실히 야외다 보니까 음질이 너무 찢어지더라.. 나는 막귀인데도 음질이 찢어지는 게 들릴 정도였다. 공연장에서 듣는 서울시향의 아름다운 음을 혹시나 처음 들어본 사람이 오해할까 걱정이 됐다. 야외라서 그런 거예요ㅠㅠ 금관악기는 소리가 엄청 찢어지고 목관은 소리가 먹는 것처럼 들려서 정말 안타까웠다. 
 
오케스트라의 연주 외에도 소프라노 홍주영, 테너 백석종이 협연해 오페라의 곡을 불렀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사람의 목소리가 가장 좋은 악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싶을 정도로. 단 한명의 목소리가 큰 오케스트라를 포용할 수 있다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특히 바리톤에서 테너로 전향한 백석종 성악가의 목소리... 사람의 목소리에서 온도가 느껴지는 건 신기한 일이다. 겨울 노천탕에 발을 담글 때의 그 따뜻함이 백석종 테너의 목소리에 있었다. 지휘는 데이비드 이 부지휘자가 맡았다. 마지막 곡인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지휘할 때,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카메라가 데이비드 이를 클로즈 업 했는데 정말 충격받았다. 황홀경에 빠진 얼굴로 너무 행복하게 지휘하고 있는 표정을 보는데 '저 사람 음악을 정말 사랑하는구나, 지금 너무 행복하구나'가 또렷하게 보여서... 몰입한 사람의 얼굴은 정말 멋있다는 걸 알았다.
 
앵콜곡으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연주되었다. 예정된 불꽃놀이였지만 여전히 멋있었고, 불꽃의 소리에 조금 묻혔지만 다시 만난 세계 또한 여름밤을 마무리하기 좋았다. 서울시향 강변 음악회... 내년에라도 이 글을 보는 사람이 있다는 한 번 꼭 가보길! 예술의 전당이나 롯데콘서트홀에서 보는 공연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2023 서울시립교향악단 강변음악회 프로그램

 
차이콥스키,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중 ‘폴로네이즈’
차이콥스키, 발레 <백조의 호수> 모음곡 중 ‘정경’과 ‘왈츠’
구노, 오페라 <파우스트> 중 ‘보석의 노래’ (소프라노 홍주영)
카르딜로, ‘무정한 마음’ (테너 백석종)
보로딘, 오페라 <이고리 공> 중 폴로베츠인의 춤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 중 ‘내 이름은 미미’ (소프라노 홍주영)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중 ‘아무도 잠들지 말라’ (테너 백석종)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 (소프라노 홍주영, 테너 백석종)
엘가, ‘위풍당당 행진곡’


   

앞에서 포스터를 나눠준다.

공연 시작 전

서울시향 데이비드 이 부지휘자와 단원들

공연장 뒤로 노을이 진다

서울시향 강변음악회 불꽃놀이

여의도한강공원 불꽃놀이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