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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 사는 사람
아모레퍼시픽뮤지엄, [조선, 병풍의 나라 2] 후기 본문
국립현대미술관 도슨트 수업을 듣고 신용산역 아모레퍼시픽 뮤지엄으로 갔다. 이전에도 볼까 생각은 했지만 그다지 끌리지 않았는데, 강의를 해주신 교수님이 극찬을 하셔서 가보기로 했다. 그래서 같이 교육을 듣는 H님과 함께 전시를 보러 가기로 했다.
왜 숫자 2가 붙었는지 봤더니 2018년에도 한 번 병풍 전시를 했었다고 한다. 그 때 소개되지 않은 작품과 새로 APMA에서 수집한 작품을 더해서 전시를 오픈한 것이었다. 입장료가 15000원으로 사립 미술관이라 가격대가 꽤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값이 너무 싸다... 3만원 받아서 봐도되는 전시라고 생각한다.
입장부터 디지털 디스플레이로 병풍을 보여준 점이.. 여기 학예사 일 잘한다... 이전 안드레아스 거스키 전시 때도 감탄을 했는데...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병풍을 빔으로 쏘고 있었고, 여러 종류의 병풍들이 있었다. 확실히 아모레퍼시픽 뮤지엄은 넓은 공간과 높은 층고가 주는 편안함이 있어서 사람이 많아도 감상하기가 좋다.
물품 보관함에 짐을 넣어두고 앱을 깔아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면서 작품을 보기 시작했다. 원래 집중력이 짧은 편이라 오디오 가이드를 급하게 듣거나 뛰어넘거나 하는데, 병풍은 설명이 필요한 내용들이 많고, 담고있는 의미가 많아서 오디오 가이드도 재미있었다.
위 아래 나눠진 구도가 귀엽다.
서 안에 딱 맞게 끼워맞춘 매화의 디테일이 엄청나다.
이런 조각보 같은 형태의 병풍이 있다는게 신기했다. 다양한 틀 중에 파초의 모양이 가장 귀여웠다.
사람의 일생을 담은 병풍. 오른쪽 돌잔치 부터 시작해서 급제~혼례까지 그려져 있어서 재미있었다.
귀하고 비싼 청색 안료를 오묘하게 담아냈는데, 실제로 보면 색감이 정말 독특하다. 농사를 하는 다양한 모습들이 그려져 있었다.
호족들의 병풍을 받은 거라고 했나..? 그래서 말을 타는 장면이 많았다.
암석의 끝에만 물감을 칠한 것이 매우 세련된 느낌을 준다.
동물 백과사전 병풍도 있었다. 정말 독특하다... 전설의 동물인 해태같은 것도 그려져 있고, 책이나 구전으로만 접했을 코끼리, 원숭이도 그려져 있다.
이게 아마 원숭이일 것 같은데, 실제로 보지 못하고 상상으로 그렸기 때문인지 괴이하다... 밤 중에 창문을 두드려 나랑 거래 하러 온 악마 같은 느낌?
빔으로 바닥 비출 생각 대체 어떻게 한거야... 학예사님 상드려... 아무리 가까이 볼 수 있어도 한계가 있는데 이렇게 빔으로 바닥에 쏴 주니까 작은 점도 크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계속 움직여서 멀미났음...
이 병풍 빔은 앉아서 광각모드로 찍으면 굉장히 멋있게 나온다. 내가 마치 병풍 속 일부인 것마냥 잘 찍어주신 H님 고맙습니다 ㅎㅎ
이 병풍도 재미있었다. 위/아래로 나누어서 보면 위에는 현자를 모시러 온 왕과 대신들이고 아래에는 설화 속 위인들이다. 제갈량도 있고 이백도 있다.
구운몽을 그려낸 병풍. 마지막에 성진이를 깨우는 장면만 찍었다. 신기한 점은 이런 이야기 내용을 담은 병풍들이 스토리 순서로 배치되어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전시 때는 스토리 순으로 변경했음) 그 시절 사람들에게 내용 보다는 그 그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해서 순서대로 배치는 안 되어있었다고 함.
삼국지연의 병풍도 정말 재미있었다. 다 아는 내용이라 그런가...? 제갈량을 모시러 간 삼형제 - 유비의 아들 아두를 안고 달리는 조자룡, 장판교 위의 장비 - 관우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조조 - 거문고를 타며 사마의의 대군을 물리치는 제갈량까지...! 역시 알 수록 더 잘 보인다. 이것 외에도 수염을 자르는 조조 같은 것도 정말 재미있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병풍 중 하나. H님이랑 보면서 집에 걸어두고 싶은 병풍 고르기 놀이를 했는데, 난 이걸 골랐다. 서왕모의 생일잔치를 그려놓은 병풍인데 디테일이 엄청나다.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도교, 불교의 신선들, 연회를 즐기는 서왕모까지. 동화적이고 오묘하다. 또 다양한 종류의 초록색이 많이 섞여 있어서 푸릇푸릇한 느낌도 들고 정말 극락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정조의 화성 행차를 그린 병풍이었는데, 교과서로만 보던 것을 실제로 보니 크기가 엄청나더라.. 이렇게 클 줄이야!
근데 디테일이 미쳤어... 정말 많은 시민과 병사들을 하나하나 다 그려두었다. 지형도 엄정 섬세하게 다 그리고.. 털 한 3가닥짜리 붓을 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중간에 이런 소파 좌석도 있고 [조선, 병풍의 나라 2] 도록 샘플도 있어서 볼 수 있다. 다리가 꽤 아파서 조금 앉아서 도록을 보니 그것도 또 재미있었다. 전시에 없는 작품들도 도록에 많이 실려있어서 도록 뽐뿌가 확 왔다.
이건 조금 특이한 일월오봉도이다. 보통은 아래 병풍처럼 봉우리가 있어야 하는데 이 병풍에는 천도가 그려져 있다.
경복궁, 창경궁 등 근정전 멀리서나 보던 일월오봉도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니! 가까이서 보니 느낌이 색달랐다. 비단에 채색을 한 거라고 하는데 가까이서 보니 질감이 나무에 채색한 듯 나무결같이 물감이 굳어있었다. 색도 의외로 쨍했다. 궁에서 볼 때는 칙칙한 감이 없지않아 있었는데.. 이게 바로 조명빨?
원근법에 감탄한 그림. 그리고 색 조합이 엄청 현대적이다. 신식 한옥의 단청같은 쨍하고 화려한 색을 써서 (조명 덕도 있겠지만) 크기도 작은데 눈에 확 띄었다.
왕실과 고위층일수록 확실히 병풍에 색이 다양하다. 돈의 맛이구나...
고종이 51세가 되며 열었던 행사(이름 까먹음)를 기념하여 제작한 병풍. 고종시절이다 보니 몇몇 병사들이 양식 의복을 입고 있는게 재미있다. 그리고 역시나 디테일...
매화그림이 유행했다는 시기의 병풍. 굵고 이리저리 뻗은 줄기의 힘이 대단하다.
굉장히 독특한 병풍. 조선의 마지막 궁중화가 안중식이 검은 비단에 그린 병풍이다. 왠지... 광공의 집에 있을 것 만 같은 절제미가 있다. 블랙/화이트 인테리어에 너무 잘 어울릴 듯 하다.
자수 병풍은 너무 예쁘고 그 디테일이 놀라워서 사진을 여러장 찍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냔 말이야... 저게 어떻게 손으로 한 땀 한 땀 꿴거냐 이말이야.. 너무 아름다웠다. 그래서 새의 경우에도 실제 털처럼 윤기가 좌르르르 흐르는 느낌이었다. 물결의 파동까지 자수라니.. 정말 놀랍다, 놀라워..! 그리고 가지고 싶다...
세계지도 병풍은 또 처음이네... 못 보던 병풍 투성이지만 세계지도 병풍은 정말 신기했다. 환상의 동물들을 그려넣은 것도, 지도를 병풍에다 그려놓을 생각을 한 것도 신기했다.
경기감영을 그린 병풍. 산의 기세가 정말 대단하다.
작은 미니어처 세계에 온 것 마냥 갖은 디테일을 다 그려두었다. 대단해...
근대기 화가 이상범의 산수화. 원근도 원근인데 소재가 정말 향토적이다.
변관식 화가의 작품이었던 것 같다. 조용한 산촌 마을의 풍경이 담담하게 담겨있어서 평온한 느낌이 든다.
채용신 화가의 병풍. 장수를 상징하는 소재들로 병풍을 그렸는데 특이하게 원숭이, 파초, 앵무새 같은 동물들이 있다. 서양화법+일본화풍을 수용해서 전통적인 장생도와 다른 느낌을 준다.
서화미술회 출신 스승과 제자의 그림을 모아 제작한 병풍. 근대 미술하면 바로 나오는 인물들이 합작해서 그린 작품이라니..! 누가 이 사람들을 한 데 모아서 그림을 그리게 할 수 있었을 지 궁금하다. 장수와 부귀공명을 기원하는 소재라 선물용이었을 거라고 추측한다는데... 나 줘요
이것도 한국 근대기 전통화단을 대표하는 서화가 10명이 사계절 산수를 나누어 그린 합작 병풍이다. 다만 폭마다 작가와 제작 시기가 달라서 독립작품을 모아서 병풍으로 꾸민 것으로 추측한다고 함.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을 그린 호피도. 물론 표범의 모양이지만 옛날에는 호랑이와 표범을 구분짓지 않았기에 통칭 호피도라고 했다고 한다. 왠지 발렌티노 패션쇼 런웨이 뒤에 깔려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인지는.. 나도 몰라. 그냥 발렌티노 핑크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
호피 장막 안을 그린 병풍도 인상적이었다. 장막 안에 있는 것들은 조선사람들의 장식 취향이 듬~뿍 들어있다고 한다. 귀여워... 서랍 안에 있는 거 다 그려둔 거란 뜻이잖아... 정말 흥미진진한 건 저 펼쳐진 책에 있는 내용이 정약용의 시가 적혀있다고 함.. 신기하다 신기해
아모레 퍼시픽 미술관 (APMA)의 조선, 병풍의 나라 2를 보고
병풍이 단지 제사 때 뒤에 놓여있는 역할 만은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다. 일상생활에야 병풍을 볼 일이 없으니 장식으로 썼다는 걸 알았어도 큰 감흥이 없었는데 전시를 보면서 정말로! 정말로! 병풍으로 집을 꾸미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하고 멋진 병풍들이 많다니...! 그리고 시대에 따라 변하는 원근감이라던가, 소재가 달라지는 것을 보며 시대별 사람들의 (아마도 대부분 부유층일..) 기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도슨트 교육에서 배운 근대 화가들의 이름을 보며 반갑기도 했고... 너무나 많은 작품들이 쾌적한 공간에 전시되어 있어서 정말 15000원이 아깝지 않았다. 안드레아스 거스키 때부터 아모레 뮤지엄 전시는 믿고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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